중국에 시안이라는 도시가 있다. 옛날 이름은 장안. 당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경주나 일본의 교토같은 역사도시이고 3000년의 도시 역사 중에 1500년을 중국의 수도역할을 했다고 한다. 서울의 보신각과 같이 시내 한복판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을 쳐주던 건물이 사진에 보이는 중러우이고 이 도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 모양을 봐서는 보신각 종 보다는 남대문에 가깝게 생겼고 남대문 처럼 중국 병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위병 교대 비스무레한 걸 한다. 시간은 밤에도 알려주어야 했을 거고 밤에 종을 치면 사람들이 잠을 설칠 것이다. 가끔 유럽에서 교회 종소리나 터키에서 이슬람 사원에서 나오는 소리 때문에 잠을 깼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 상황이 대충 이해는 된다. 이런 고통을 왕까지 당해야 했다면 당연히..
지난 번에 대한항공이 연착되어서 인천공항에서 무지 어렵게 집에 간 기억이 있어 좀 걱정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연착은 아니었다. 오히려 타오위안 공항에 공항버스 타고 가는 게 조금 아슬아슬했다.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지하 식당에서 뭔가를 먹었다. 좀 정크푸드같은 맛이 났던 걸로 기억. 타오위안공항 지하 푸드코트. 리노베이션을 해서 깔끔한 모습이다. 공항 자체는 조금 오래되어 보이지만. 정말 텅텅 빈 비행기를 탔다. 덕분에 옆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편하게 왔다. 기내식은 소고기를 시켰는 데 맛은 그냥 그랬던 걸로.
타이페이에 오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이곳을 보러 오는 지도 모르겠다. 장제스는 수많은 군인들을 숙청당하게 만들면서 배 한가득 자금성에 있던 보물과 황금을 실어 왔다고 한다. 황금은 대만 건국의 밑천이 되었다고 하고 보물은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콜렉션이 워낙 방대해서 한 번에 전시를 다 못하고 몇 년에 걸쳐서 나누어 전시하는 데 내부에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서 사진을 못찍은 듯 하다. 고대인들의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느낄만한 작품이 매우 많기는 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유물들이 조금 초라해 보이기도 했고. 중국 사람들이 잘난 조상을 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작품 하나하나에 감동을 받기에는 내 안목이 조금 부족한 것일 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시각엔 왜 그 귀한 옥으로 정교하게..
가이드가 수십억이 투자되었고 라스베가스 쇼를 연상시킬만큼 화려한 스펙터클을 제공한다고 주장해서 이 극장을 찾았다. 라스베가스는 호텔 안에 극장이 있어 한계가 있지만 여기는 전용 극장이라 더 웅장하다고 주장했는데 일단 극장은 새로 깔끔하게 지은 것 같았다. 이름이 화교의 성인 것으로 봐서는 화교 자본이 투입된 극장일 것 같았다. 가이드가 추천한 쇼의 한장면이다. 돈많이 들였고 중국 배우 중에 아크로바틱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은 건 일단 인정하겠다. 특히 쇼 후반에 보이는 폭포수 장면은 압권이라 이거 한 장면 만으로도 입장료를 잘 DC 받아 들어 왔으면 본전 생각은 안 날 것 같았다. 그런데 라스베가스에 비해 객석을 대규모로 가져가다 보니 무대 구성이 평면적일 수 밖에 없었고 남자 무용수들을 중심..
베이징에서 새롭게 개발되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진찬시루의 모습이다. 사진은 그런 설명이 무색하게 어딘지 우중충하게 찍혔다. 진찬시루에 새로 조성된 놀이공원 歡樂谷의 모습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롤러코스터라는 설명을 들어도 촌스러운 벽화 때문에 시골 어느 동네의 놀이 동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파스텔 톤의 집이 이어 붙어있는 것 같은 모양의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를 패러디한 베이징의 베키오(維吉奧)의 모습이다. 아래 물대신 자동차가 흐르고 폭포가 떨어지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인간적으로 실물과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
칭화대학은 베이징 대학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로 꼽힌다. 중국 사람들 가슴속에는 베이징 대학이 최고의 대학으로 남아 있지만 공대를 중심으로 한 칭화대학이 각종 통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공계 출신 고위 공직자가 많안 중국이어서 후진타오나 시진핑 같은 사람들이 이곳 출신이라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듯 하다. 이곳은 대학이 생기기 전에 귀족 저택의 정원이었다가 공원이 된 곳이었고 그 흔적이 칭화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사진 속 문과 함께 남아 있다. 1911년 중국에는 의화단의 항쟁이 있었고 그때 서양 공관이 습격되어 서양 7개국 연합군이 개입하여 의화단을 진압하였고 청나라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7개국 중 미국은 전쟁 배상금으로 학교를 지어주는 데 그게 현재 칭화대학의 ..
중국에서 나오는 기암 괴석으로 장식했다는 자금성의 정원 어화원에 있는 조형물의 모습이다. 困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나무를 심지 않은 자금성이지만 정원에는 나무가 없을 수 없고 이곳 만큼은 둘레 모양을 조금 다르게 만들고 나무를 심어 놓았다고 한다. 누군가 자금성을 보고 경복궁은 자금성의 화장실 수준이라고 해서 그런가 했는 데 실제 보니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별로였다. 자금성의 후문 뒤로 언덕 위에 정자들이 보이는데 원나라 이후 황제의 정원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청나라 멸망 이후 국민당 군대가 말을 먹이는 목초지로 사용했다가 1928년 다시 공원으로 정비되었다고 한다. 올라가면 전망이 좋다고 하는데 일정상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의 모습이다. 가이드가 우리나라 교태전과는 뭔가 다르다고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중국 100배 즐기기에는 왕비의 침실이라기 보다는 사무실이 되었고 옥새를 보관하는 곳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가이드도 그런 설명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왕비가 옥새를 관리하다니... 옥새를 여자가 관리하기는 했지만 중국에서도 분명 남존여비는 있어 왕이 거처하는 곳은 하늘 乾이 왕비가 거처하는 곳은 땅 坤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왕비가 교태전에서 잠도 잤던 것 같은데 중국에서는 잠은 이곳 곤녕궁에서 잤던 모양이다.
황제의 생활공간인 건청궁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건청문의 현판이다. 한족과의 융화를 생각해서 공적인 업무를 하는 공간에 있는 건물의 현판은 한자로만 적었지만 이곳부터 사적인 공간에 있는 건물의 현판은 한자와 만주 글자를 병기했다고 한다. 만주 글자 특이하게 생겼다. 자금성에서 왕이 거처하던 공간인 건청궁의 모습이다. 청나라 옹정제 이전의 황제들은 암살을 피하기 위해 27개의 침대를 놓고 매일 침대를 바꾸어 가면서 잤다고 하고 옹정제 이후에는 비밀 침소인 양심전을 만들어 그 곳에서 잤다고 한다. 이 건물의 왕이 앉던 의자 위에 正大光明이라는 편액이 있다. 청나라는 장자 상속제가 아니라 왕이 맘에 드는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체제였고 왕이 급사했을 때 분란을 막기 위해 계승자의 이름을 편액 뒤와 왕의 속옷 ..
태화문을 지나면 태화전이 나온다. 근정전이 경복궁을 대표하듯 태화전은 자금성을 대표하는 중국 최대의 목조 건물이라고 한다. 황제의 즉위식, 조서 반포, 왕자 탄생 축하 등의 행사가 열린 곳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미에 세뇌 당한 나로서는 경복궁 근정전의 빈틈없이 정돈된 모습에 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태화전의 하얀 기단은 대리석이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이 화려한 모습에 황제를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나로서는 '글쎄...'다. 태화전에는 황제가 앉던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황제 이외의 사람이 앉으면 위에서 구슬이 떨어져 그 사람을 때리게 되어 있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는데 조사 결과 그런 장치는 없다고 한다. 황제는 불로 장생하는 게 아니고 결국 왕위는 누군가가 계승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