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남기고 간 대표적인 건물로 이곳도 칭다오를 상징하는 곳 중 하나인 것 같다. 쌍둥이 첨탑을 보면 어딘 지 뮌헨의 성당이 생각나기도 한다. 많은 부분이 문화혁명 때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다고 하고 가이드 북에서는 내부도 나름대로 볼만하고 벽화도 있으니 관심있으면 입장료 내고 들어가 보라고 되어 있다. 나는 불행히 입장 시간이 지나서 이 앞을 지나게 되어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중국 100배 즐기기에서는 별 5개 만점에 2개를 주고 있지만 나는 별 3개 줄 것 같다. 건물도 나름 멋지고 사진 반대 쪽 벽돌 바닥의 광장도 괜찮고 중국에서 가장 유럽 분위기가 많이 나는 도시라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칭다오를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이고 사진 속 건물은 칭다오 맥주 마크에도 들어가 있다. 칭다오 10경 중 하나라고 하고 1891년 열강의 침략에 위협을 느낀 청나라가 해군의 화물 접안 기지로 건설한 다리라고 한다. 그때 만든 다리는 1차대전 중에 독일이 폭파시켰고 현재에 있는 다리는 1931년 재건한 놈이라고 한다. 가이드 북의 설명대로 많은 인파가 북적이고 기념 촬영도 많이 한다. 뭐 딱히 멋질 것까지는 없지만 밤에는 나트륨등에 불이 들어오고 신기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이 늘어서고 그리고 무엇보다 칭다오에 왔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곳. 중국 100배 즐기기에서는 별 5개 만점에 별 3개 주고 있는데 나도 그쯤 줄 것 같다. 나는 별 반개 쯤 더 주려나?
칭다오에 가기 위해 먼저 인청 공항에 갔다. 외국인을 위해 이런 퍼레이드도 준비한 듯. 칭다오는 중국에서도 우리나라랑 아주 가까운 곳. 칭다오까지의 비행시간은 한 시간 남짓. 제주도보다 살짝 긴 정도다. 결과적으로 기내식이 좀 부실하고 음료수 마저도 기본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물론 승무원에게 달라고 하면 가져다 주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정도 구간에서 밥을 주는 게 어디냐고 하면 할말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기내식 때문에 굳이 아시아나를 선택했던 걸 감안하면 조금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 공항과 시내는 25 km 정도 떨어져 있다. 호텔은 칭다오 기차역 근처였는데 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택시를 타거나 공항버스를 타면 내려서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일단 버스를 보고 여의치 않으면 택시를 타려고 안내 받은..
시안 공항에 올 때 공항에는 밤 12시쯤 떨어졌고 공항에서 시안 교통대로 들어올 때 pick up 서비스를 이용했다. 택시 타면 170위안 정도 나올 텐데 200위안 내면 학교 직원 보내서 피켓 들고 서 있다가 데리고 와 주겠단다. 그래서 그렇게 왔는 데 다음 날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니 다양했다. 택시를 타고 온 대학원 생은 250위안에 왔다고 하고 170위안이라고 들었다고 흥정한 교수님은 200위안에 왔고 중국어를 하는 박사님은 170위안에 왔다는 것이다. 이쯤되니 시안 교통대에서 공항으로 갈 때 등록 데스크에 있던 시안 교통대 학생에게 택시값 흥정을 부탁했다. 잠시 후 현재 120 위안인데 맘에 들면 타고 가고 맘에 안 들면 더 깎아 보겠단다. 물론 Thank you very much였다. 중국어 못..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이다. 진시황 이후에 중국에 수많은 황제가 있었지만 진시황의 무덤이 가장 크다고 한다. 가로, 세로 400미터쯤 되고 높이가 80미터로 이집트의 쿠푸왕이라는 왕의 피라미드와 함께 세계에서도 가장 큰 왕릉이라고 한다. 진시황은 사후 세계를 위해 당시 수도였던 센양의 축소판을 자기 무덤에 만들어 놓았고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보통의 산처럼 위장했다고 하는 데 일단 사진 속에 보이는 앞에 조성된 정원이 없다면 그냥 산처럼 보일 것 같다. 당시 중국의 수도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는 릉의 내부가 매우 궁금하긴 하지만 발굴을 안하고 있어 진시황릉은 그냥 계단으로 릉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가이드북의 평은 '무덤이라는 걸 빼면 언덕에 불과한것을 뭐 힘들게 오르냐는 의견도 있지..
론리 플래닛의 몇 판이었는 지 모르겠지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은 진시황의 병마용 이었는 데 그 곳은 시안 근처에 있었다. 시안까지 왔는 데 그걸 안 보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 데 이쪽에 자주 와 본 선배가 '병마용 박물관은 택시 미터기 꺾고 가는 곳이고 택시 운전기사랑 보통 흥정을 해야 하는 데 잘하면 200위안 정도에 흥정할 수 있을 거고 거기에 입장료가 90위안이 붙는 데 뭐 그다지 대단할 건 없다. 비추다.'라고 말해서 '그런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시안 교통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분이 조율을 해 주어서 기름값, 운전 기사비 다 포함해서 300위안에 빌렸고 학생 한명을 가이드로 소개 받아서 전격적으로 이곳에 가기로 했다. 그 학생은 초등학교 때 단체로 구경와 본 이래..
학회가 열렸던 난양호텔의 모습이다. 학회에서 등록비 사전 결제가 잘 안되어서 결국 호텔의 카드 결제 시스템으로 결제를 했는 데 호텔이 중국어로 酒店이어서 학회 등록비 카드 전표가 주점에서 발행된 것으로 되어 좀 난감했다. 학회에서 발급한 영수증과 함께 처리하여 다행히 별 무리는 없었지만. 중국의 물가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방을 비싸고 별로 안좋다고 평하기도 했는 데 한국의 물가 감각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1박에 대충 4만원 쯤 하는 방이 우리나라 별 5개 호텔 중에 좀 후진 놈하고 비스무래한 수준이면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의 명문대학 중 하나인 서안 교통대학의 모습이다. 오래된 느낌의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캠퍼스도 꽤 아름답고 좋았다. 장쩌민 주석이 나온 교통대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교통과는 관계가 없고 '하늘과 통하는 학문을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만든 고유명사라고 한다. 원래는 상해에 있었는 데 국방기술 연구를 많이 하다보니 냉전시대에 미국의 항공모함이 와서 가볍게 폭격할 수 있는 항구도시 상해는 부적격지라고 생각하여 내륙의 서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해의 교통대학을 폐교하지는 않았고 그 자리에 다시 학교를 만들어 오늘날 상해 교통대학이 되었다고 하고 서안 교통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쪽이 원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지금은 상해의 경제력이 월등해서 상대적으로 상해 교통대학보다 많이 밀리는 느낌이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