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화대학은 베이징 대학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로 꼽힌다. 중국 사람들 가슴속에는 베이징 대학이 최고의 대학으로 남아 있지만 공대를 중심으로 한 칭화대학이 각종 통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공계 출신 고위 공직자가 많안 중국이어서 후진타오나 시진핑 같은 사람들이 이곳 출신이라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듯 하다. 이곳은 대학이 생기기 전에 귀족 저택의 정원이었다가 공원이 된 곳이었고 그 흔적이 칭화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사진 속 문과 함께 남아 있다. 1911년 중국에는 의화단의 항쟁이 있었고 그때 서양 공관이 습격되어 서양 7개국 연합군이 개입하여 의화단을 진압하였고 청나라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7개국 중 미국은 전쟁 배상금으로 학교를 지어주는 데 그게 현재 칭화대학의 ..
중국에서 나오는 기암 괴석으로 장식했다는 자금성의 정원 어화원에 있는 조형물의 모습이다. 困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나무를 심지 않은 자금성이지만 정원에는 나무가 없을 수 없고 이곳 만큼은 둘레 모양을 조금 다르게 만들고 나무를 심어 놓았다고 한다. 누군가 자금성을 보고 경복궁은 자금성의 화장실 수준이라고 해서 그런가 했는 데 실제 보니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별로였다. 자금성의 후문 뒤로 언덕 위에 정자들이 보이는데 원나라 이후 황제의 정원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청나라 멸망 이후 국민당 군대가 말을 먹이는 목초지로 사용했다가 1928년 다시 공원으로 정비되었다고 한다. 올라가면 전망이 좋다고 하는데 일정상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의 모습이다. 가이드가 우리나라 교태전과는 뭔가 다르다고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중국 100배 즐기기에는 왕비의 침실이라기 보다는 사무실이 되었고 옥새를 보관하는 곳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가이드도 그런 설명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왕비가 옥새를 관리하다니... 옥새를 여자가 관리하기는 했지만 중국에서도 분명 남존여비는 있어 왕이 거처하는 곳은 하늘 乾이 왕비가 거처하는 곳은 땅 坤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왕비가 교태전에서 잠도 잤던 것 같은데 중국에서는 잠은 이곳 곤녕궁에서 잤던 모양이다.
황제의 생활공간인 건청궁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건청문의 현판이다. 한족과의 융화를 생각해서 공적인 업무를 하는 공간에 있는 건물의 현판은 한자로만 적었지만 이곳부터 사적인 공간에 있는 건물의 현판은 한자와 만주 글자를 병기했다고 한다. 만주 글자 특이하게 생겼다. 자금성에서 왕이 거처하던 공간인 건청궁의 모습이다. 청나라 옹정제 이전의 황제들은 암살을 피하기 위해 27개의 침대를 놓고 매일 침대를 바꾸어 가면서 잤다고 하고 옹정제 이후에는 비밀 침소인 양심전을 만들어 그 곳에서 잤다고 한다. 이 건물의 왕이 앉던 의자 위에 正大光明이라는 편액이 있다. 청나라는 장자 상속제가 아니라 왕이 맘에 드는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체제였고 왕이 급사했을 때 분란을 막기 위해 계승자의 이름을 편액 뒤와 왕의 속옷 ..
태화문을 지나면 태화전이 나온다. 근정전이 경복궁을 대표하듯 태화전은 자금성을 대표하는 중국 최대의 목조 건물이라고 한다. 황제의 즉위식, 조서 반포, 왕자 탄생 축하 등의 행사가 열린 곳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미에 세뇌 당한 나로서는 경복궁 근정전의 빈틈없이 정돈된 모습에 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태화전의 하얀 기단은 대리석이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이 화려한 모습에 황제를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나로서는 '글쎄...'다. 태화전에는 황제가 앉던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황제 이외의 사람이 앉으면 위에서 구슬이 떨어져 그 사람을 때리게 되어 있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는데 조사 결과 그런 장치는 없다고 한다. 황제는 불로 장생하는 게 아니고 결국 왕위는 누군가가 계승할 수 밖에..
자금성의 표를 사서 들어가는 입구인 오문의 모습이다. 오문이라는 이름은 좌우 5개의 누각이 있고 그 모습이 봉황새와 같다고 주장하는데 그보다 내 눈에 벽면에 떨어져 나간 페인트가 엉성해 보이는 건 직사 광선 속에서 표를 끊는 걸 오래 기다리다 보니 짜증이 난 나의 심리상태에서 나온 느낌일까? 중앙의 대형 누각에는 종과 북이 설치되어 황제가 이곳을 드나들 때 신호를 주었다고 한다. 가운데 문이 좀 큰데 그 문은 황제 전용이고 그 외의 사람으로는 왕비가 시집오면서 입장할 때 1번, 과거시험 1, 2, 3등 합격자가 퇴장할 때 1번 이용이 가능했다고 한다. 지루하게 기다려 표를 산 다음 드디어 자금성에 들어 왔다. 일단 어딘지 허름했던 바깥 풍경과 달리 사진 속의 태화문을 보면 '와!'라는 감탄사를 잠깐 내게..
천안문광장. 일단 엄청난 인파와 만났다. 세계최대의 광장으로 100만명이 운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기대를 너무 크게 해서 그런지 무지막지하게 넓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 황제의 조서를 발표하던 광장이었다고 하는데 1919년의 54운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1966년 문화혁명, 1976년 1차 천안문 사태, 1989년 2차 천안문 사태 등이 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요즘에는 데모하는 장소로 많이 활용되어 파룬궁 신도같은 사람들이 데모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CCTV도 많이 설치되어 있고 경비도 나름 삼엄한 것 같았다. '중국 100배 즐기기'에서는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장소라는 설명과 함께 별 5개 만점에 4개를 주고 있지만 내..
북경은 김포에서도 출발할 수 있어 김포공항에서 북경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탔다. 기내식은 소고기 볶음 요리였는데 일단 김치가 있다는 게 맘에 든다. 초콜렛 케익도 맛났던 걸로 기억. 2시간 좀 안 걸려서 북경에 도착했다. 북경 공항 이름은 베이징서우두궈즈치창(北京首都國際機場). 1999년에 새로 지었다고 하는데 큰 공항임에도 불구하고 청사가 1개만 있어서 정말 길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올림픽 경기장을 조금 연상시키는 철제 프레임의 건물이 인상적이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를 탔다. 천으로 된 흰색 의자 커버가 옛날 버스를 조금 연상시킨다. 여행사는 국영이고 버스도 나라 소유이고 공무원이 행차할 때 쓰겠다고 하면 차출된다고 한다. 가이드도 준 공무원이고... 공산 국가여서 그런지 뭔가 ..
상하이에서 묵었던 Nanpu Rayfont Hotel의 모습이다. 위치도 아주 외지지 않고 4성급임에도 저렴한 가격이어서 낼름 예약을 했지만 꽤 고생을 했다. 먼저 영어 이름을 알고 물어보면 보통의 중국 사람은 모른다. 그럴 때 영어로 써 있는 주소를 내밀면 동음 이의어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이곳의 주소가 Nanchang street 로 되어 있는데 중국 사람들은 그 지명을 들으면 南昌路를 생각하고 번지수를 택시를 타고 찾아 가 보았더니 양품점이었다. 다행히 양품점 주인이 인터넷을 찾아 한자로 지명을 다시 써 주었는데 南倉街가 맞는 주소였다. 동음이의어가 많아 성조로 구별하는 나라의 주소를 영어 발음으로 적어 갔으니...뭐 지하철 2호선의 시청, 신천, 신촌이 도저히 구별이 가지 않는다는 외국인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