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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 시내 구경은 베이먼(北門)에서 시작했다. 원래 타이페이는 성곽으로 둘러쌓인 도시였으나 일본 식민지가 되면서 문만 놔두고 성벽을 철거했다고 한다. 그나마도 이런 저런 과정을 겪으며 다 무너지고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사진 속의 북문이 유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대문, 동대문이 숭례문, 흥인지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듯이 타이페이의 문들도 뭔가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북문의 이름은 承思門(청스먼)이라고 한다. 생각이 이어지는 문이라는 뜻일까? 뭐 이런 저런 설명을 보아도 내 느낌에는 큰 변화가 없다. '에이, 이게 뭐야. 별로 볼 품없다.'

 

베이먼 가까운 곳에 일본식 건물인 궈푸스지지넨관(國父史跡記念館)이 있다. 1900년에 지어진 여관인데 1913년, 1914년 쑨원이 타이페이를 방문했을 때 묵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일제 시대가 끝난 1946년 대만 정부는 여기를 기념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통성에 집착하기로 유명한데 중국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일단 그냥 봐서는 쑨원 관련 유품이 조금 있는 잘 보존된 옛날 일본식 여관이다.

 

장제스를 기념하는 타이페이의 궈리중정지넨탕(國立中正記念館)이다. 타이페이에서 본 건축물 중 가장 인상 깊은 건 이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101빌딩은 생각보다 인상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이놈은 '크다. 역시 중국 사람들은 큰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1975년 장제스 총독이 죽고 나서 화교들이 돈을 모아 1980년 완공시킨 건물이라고 한다. 원래는 장제스의 호를 따서 중정기념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2007년 천수이벤 총독이 대만 독립을 선언하면서 민주기념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2008년 국민당이 다시 집권하면서 원래 이름을 복원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명분 싸움을 하는 건 대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중정기념관 옆에 야자수가 우거진 공원이 있다. 이름은 얼얼빠허핑공위안(二二八和平公園)이다. 1947년 2월 28일에 이곳에서 뭔가 사건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518과 같이 역사적 평가와 함께 진실 규명, 화해 등등의 논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 했다. 공원 자체는 대만 중부권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고 하는데 시내 한 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살짝 부럽기도 했다. 가운데 평화를 상징하는 종 조형물이 있고 거기까지 이어지는 길이 발바닥을 지압할 수 있는 블록으로 되어 있는 데 맨발로 걸어 보니 요철이 꽤 크게 나와 있어서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팠다.

 

사건은 대충 이런 것 같다. 대만에서 1947년 2월 28일 밀수 담배를 팔던 할머니를 전매청 직원 신고를 받은 경찰이 무자비하게 폭행할 때 시민들이 항의를 했고 반정부 시위로 번져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하는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2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시민이 학살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등휘 총독이 사과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진실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기념 공원 한 켠에는 자료가 전시된 기념관이 있다.

 

공원 옆에는 총통부도 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 총독부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되었다가 경복궁 복원 사업과 맞물려 사라졌다. 타이페이에 있던 대만 총독부는 현재 총통부로 사용하고 있고 대만 총통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거꾸로 대만 사람이 보면 멀쩡한 건물을 부순 우리가 이해가 안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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